





유럽인의 영원한 악몽
서양 사람들이 역사 교과서에 등장하는 아시아 역사 인물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을
뽑는다면, 과연 누가 가장 많은 표를 얻을까?
"석가모니? 진시황? 공자? 칭기즈칸? 누구지??"
"아니 정답은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테러리스트중 한명이야."
"현재 파키스탄 어딘가에 숨어 생사조차 불확실한,
어쩌면 죽었을지도 모르는 금세기 최악의 테러리스트 오사마 빈 라덴도 그 앞에서 명암을 내밀진 못하지..."
"그게 누구냐고? 바로 아틸라Attila야."
아틸라는 순식간에 유럽의 모든 고대 문명을 파괴하는 동시에 깊은 상처와 공포를 심어 주었다.
중세 유럽에서 '아틸라'라는 이름만 들어도 밤새 보채던 어린아이가 울음을 그쳤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그만큼 아틸라의 명성은 우리가 상상하는 그것 이상이었다.
"그런데 훈족은 어떻게 나타난 유목 민족이야?"
"과거엔 흉노로 낙인찍었다면......."
"흉노족과 훈족이 같은 민족이라는 걸 확실히 밝혀줄 근거는 전혀 없다고.."
"애초에 헝가리는 엄청난 오해로 인해 탄생한 나라인걸... 500년만에 갑작스러운 침입을 받는 마자르 족을 훈족이라 오해 했고.... 이들 스스로도 자신들을 훈족의 후예라고 인정하였으니까...."
헝가리의 아틸라상 헝가리는 아틸라를 겸손하고 후덕한 이미지의 국왕으로
유목 민족들은 위풍당당한 전사의 이미지로 표현한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훈족
4세기 중반, 어느 날 갑자기 돈 강 서쪽 언덕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아시아계 유목민족이 나타났다.
이떄부터 약 100여년간 유럽을 종횡무진하며 유럽 고대 문명 대부분을 폐허로 만들었다.
이들은 누구인가? 어디서 왔는가?
그뒤 1000년이 넘도록 수많은 역사학자가 이들의 뿌리를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이 유목 민족은 동유럽 평원에 등장하기 전까지 그 어떠한 기록도 남기지 않은 것이어서....
하지만 18세기 후반, 동방 문화에 매료된 프랑스인 조제프 퀴니가 고대 중국 역사서를 {위서-서역전]을 읽던 중 뜻 밖의 사실을 발견하는데..
'열반국은 오손 서북쪽에 위치하는데, 대(북위의 수도)에서 1만 930여리 떨어져 있다. 그 조상은 흉노 북선우 부족이다.
한나라 거기장군 두헌에게 쫓겨난 북선우는 금미산을 넘어 서쪽 강거로 달아났다.'
"위서는 강거의 위치를 명확히 밝혔는데 강거는 오손의 서북쪽 ,
즉 아랄 해 동쪽 시르다리야 강 유역에 있었음."
"훈족의 첫 희생양이 된 알란족의 근거지로부터 불과 1,500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라고!!
더구나 서쪽으로 이동한 북흉노가 일단 강거에 도착했다면, 그뒤 200여년의 세월동안 대초원을 지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어!!"
로마 제국 쇠망사를 집필한 에드워드 기번은 퀴니의 주장을 예의 주시했고, 최종적으로 로마 쇠망사에 집필했다.
이렇게 작은 나비의 날갯짓에 불과했던 퀴니의 가설은 '훈족기원'과 관련된 논란에 불을 붙이며 역사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하지만 훈족 언어는 알타이제어에 속한 투르크어족과 더 유사하기도 하고...."
"러시아 유적지에서 발견된 유골이 훈족의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가 없으니.. DNA검사도 소용이 없지..."
"그럼 훈족의 기원에 대한 결론은 '정확히 알 수 없음' 이겠구나."
짐을 꾸려라! 훈족이 온다!
4세기 중반 오늘날 러시아 남부 북 캅카스의 쿠반강과 테렉강 사이에 해당하는 알란족이 세운 국가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월지족과 원수지간이었던 오손족이 세운 나라로 알려져 있다.
"원래 오손인은 흉노족과 연합해 월지를 쫓아내었으나, 곧 흉노족에게 통수를 맞았으니까.."
"그럼 그 오손인의 일부가 서쪽으로 도망쳐 쿠반강과 테렉강 사이에 정착했다는 거야?
"맞아 그들이 바로 알란족의 조상이지."
360년경 볼가강 하류를 건넌 훈족은 얼마 뒤 발람베르의 지휘 아래 다시 돈 강을 건넜다.
이것이 유럽 역사상 첫 훈족의 등장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훈족의 역사가 초기 유럽의 활약상이 전혀 없었던 중국 역사가에 의해 기록되었단 점이야."
"중국인들은 예부터 남일에 간섭하기 좋아했던건가?"
고향을 떠난 알란족의 일부는 게르만이 사는 유럽으로 들어갔다. 이들은 훗날 게르만족 대이동 물결에 휩싸이게 된다.
그리고 결국 이베리아 반도 동부에 도달했고. 이곳에 살던 서고트족에 융화되어, 훗날 카탈루냐인을 형성했다.
한편 지배를 받는 쪽을 택한 알란족은 오늘날 오세트 인의 조상이 되었다.
"이는 오늘날 러시아의 자치 공화국인 세베로 오세티야 공화국 영토에 해당해."
훈족이 알란족을 정복하자 알란족의 이웃인 동고트 족에게 불똥이 튀었다. 당시 동고트 족은 오늘날 우크라이나 전 지역에 해당하는
광대한 영토를 차지하고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훈족의 공격으로 흑해에 대한 지대권을 상실했다.
375년에 훈족이 드네프르 강 유역에 침입했다.
"동고트의 왕 에르마나리크가 고령의 나이로 맞서 싸웠으나... 전쟁에서 패한 후 자살을 택하게 되지."
"뿐만 아니라 그해 여름 우크라이나에서 활약하던 동고트 왕국과 속주 초원 부족 연맹이 환전히 무너졌고..."
"그럼 다음 목표는 서고트족이었겠네?"
"당연하지. 하지만 자신들보다 훨씬 강한 동고트가 속수무책으로 무너진 것을 본 서고트는."
"남하하여 도나우 강을 건너 로마로 들어갔지. 이는 곧 게르만족 이동으로 이어졌고."
훈족은 우랄산맥에서 카르파티야 산에 이르는 광대한 유럽 평원을 완전히 장악했다.
그리고 405년경 훈족은 카르파티아 산을 넘어 서쪽으로 이동, 판노니아 평원(헝가리)을 점령하고 도나우 강 유역 까지 세력을 확장했다.
그러나 432년 루길라가 부족을 통일하고 동로마 제국을 공격하려다가, 세상을 떠나자
갓 서른을 넘긴 젊은이가 그의 형과 함께 왕위에 오르는데........
그가 바로 신이 내린 재앙, 신의 채찍, 아틸라이다.
신의 채찍, 아틸라
아틸라의 이미지 묘사중 가장 사실적이라고 손꼽히는 것은 로마 역사가 프리스쿠스의 기록이다.
동일한 인물 묘사라도 개인의 주관적인 견해와 이해 정도에 따라 그 내용은 천차 만별일 수밖에 없다.
"전편에서 말했듯이 대다수 유목민은 말을 탄 위풍당당한 용사로 그렸고,"
"르네상스시대 이탈리아 인은 낭만적인 음유시인으로 묘사했지."
"그러면 헝가리 인들은 어떻게 묘사했는데?"
"아틸라의 후예임을 자처했던 그들은 겸손하고 후덕한 이미지의 위대한 국왕으로 묘사했지."
400년경에 태어난 아틸라는 434년에 자신의 형 블레다와 함께 부족경쟁자를 모두 제거한 뒤 훈족의 공동 지배자가 되었다.
왕위쟁탈전에서 살아남은 아틸라의 반대파가 동로마제국으로 도망치자 아틸라 형제는 이를 비호한다는 구실로 도나우 강을 건너 동로마 제국을 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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