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과 사는 남자’ 속 장면. /쇼박스
남한강에서 갈라진 서강이 산을 깎아내듯 굽이쳐 흐르는 영월의 청령포. 서쪽은 육육봉의 험준한 암벽이 가로막고, 나머지 삼면은 강물이 휘감아 육지의 섬처럼 고립된 땅이다.장항준 감독의 ‘왕과 사는 남자’는 이 고요한 풍경 아래 드리운 조선 제6대 국왕 단종의 역사를 다시 불러낸다. 영화는 청령포 인근 광천골의 촌장 엄흥도를 전면에 세운다. 그는 역사적 기록 위에 영화적 상상을 덧입힌 인물이다. 가난한 산골 마을을 살리려 애쓰던 그는 청령포가 유배지로 선택되도록 주선한다. 권력자였던
바다이야기예시 인물이 유배 오면 추종자가 보낼 음식과 예물로 마을이 숨통을 틀 것이고, 훗날 사면된다면 자기를 보살폈던 마을을 외면하지 않으리라는 계산이었다.그러나 유배자를 맞을 준비를 마친 주민 앞에 나타난 이는 보통의 위정자가 아니었다. 열여섯의 소년, 한때 왕이었던 단종이었다. 열두 살에 즉위했던 단종은 숙부 수양대군의 압박에 상왕으로 물러났고, 사육신의 복위 시도
게임몰 가 실패하자, 1457년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이곳으로 유배된다. 청령포는 단종을 세상에서 지우기에 더없이 적합한 장소였다. 강과 암벽이 둘러싼 지형은 연결을 차단하는 구조이자, 스스로 닫히는 감옥이었다.
강현석 - SGHS 설계회사 소장 미국 코넬대 건축
릴게임바다이야기 대학원 석사,서울대 건축학과 출강, 전 헤르조그 앤드 드 뫼롱스위스 바젤 사무소 건축가
균형을 받치는 무게의 부재유교 이념을 근간으로 한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왕과 백성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멀리 떨어진 존재였다. 그러나 고립무원의 유배지에서 만난 단종과 마을 주민 사이에는 서
릴게임바다이야기 서히 인간적인 유대가 쌓여간다. 그 매개는 소박한 밥상이었다. 생존의 근원적인 조건 앞에서 신분의 위계는 잠시 유예된다. 주민들은 궁핍한 형편에도 정성을 다해 끼니를 마련하고, 단종 역시 그 마음을 받아들인다. 그렇게 서로를 지탱하는 작은 균형이 생겨난다.역설적이게도, 밥으로 맺어진 그 관계는 생을 거두려 내려진 사약으로 끊어진다. 단종을 잠재적 위협으로
바다이야기다운로드 간주한 세조는 끝내 사약을 영월로 보낸다. 이를 거부한 단종은 엄흥도에게 부탁해 다른 죽음을 택한다.세종의 적장손인 단종은 조선 역대 국왕 가운데 정통성이 가장 분명한 왕이었다. 그러나 단종의 비극은 어린 나이에 짊어진 왕권의 무게를 함께 맞받쳐 줄 반대편 무게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부왕 문종은 젊은 나이에 승하했고, 어머니 현덕왕후 역시 단종을 낳은 지 하루 만에 산욕열로 사망했다. 수렴청정으로 어린 왕을 보호하며 권력의 균형을 잡아줄 존재는 끝내 없었다. 냉혹한 권력의 장에서 단종은 그렇게 홀로 왕권의 무게를 떠안았고, 결국 균형을 잃은 채 추락하고 만다.
1. BP 빌딩 시공 사진. 플랫폼 2. BP 빌딩 현재 모습. 아르켈로3. 파보 전시관. 구마 겐고
가늘지만 강인한 줄그럼에도 영화는 단종을 겁에 질려 무너지는 연약한 소년으로 그리지 않는다. 자신을 따르던 신하들마저 숙청당해 기댈 곳 없는 상황에서도 단종은 정통성을 지닌 왕의 기개를 잃지 않는다. 그 모습은 가늘지만 쉽게 끊어지지 않는 한 가닥 줄의 형상으로 응축된다.육육봉에서 호랑이를 맞닥뜨린 단종은 두려움에 떠는 주민 사이에서 활을 집어 든다. 맹수를 향해 팽팽히 당겨진 활줄은 두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하는 그의 내면을 드러낸다. 그 부드럽지만 강인한 줄은 세조의 사약을 거부하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순간에도 이어진다. 단종은 같은 활줄에 노끈을 잇고 목에 건 뒤, 줄의 끝을 창호 밖으로 내어 엄흥도에게 당기게 한다. 엄흥도의 비통한 울음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팽팽히 당겨진 줄은 부당한 권력 앞에서 끝까지 자신을 놓지 않으려는 의지로 남는다.가느다란 줄 하나는 역사의 여러 켜를 가로지르면서도 끊기지 않고 이어졌다. 단종은 200여 년 뒤 숙종대에 복위되었고, 오늘날 영월에서는 그를 기리는 의례가 이어진다. 왕권의 무게를 홀로 감당해야 했던 어린 왕은 무너진 것이 아니었다. 그 줄의 다른 한쪽 끝에는 마지막까지 스스로를 지탱한 단종 자신이 서 있었다.선으로 지지 되는 열두 층의 타워건축물의 균형 또한 언제나 두꺼운 벽이나 거대한 기둥에 의해서만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1963년 벨기에 안트베르펜에 지어진 ‘BP 빌딩’에서 열두 층을 지탱하는 주요 구조는 얇은 강철 케이블이다. 높이 57m의 타워는 평면 중심에 놓인 철근 콘크리트 코어를 척추로 삼는다. 장방형 코어 최상단에는 두 개의 주보가 놓이고, 그 위에 균등하게 배열된 아홉 개의 보가 팔을 벌리듯 양쪽으로 뻗어 있다. 케이블은 보의 양 끝에 고정된 채 아래로 내려와 열두 개의 바닥 판을 붙잡아 매단다.물장수가 지게 양쪽에 물독을 걸어 균형 잡은 형상처럼, BP 빌딩은 바닥 판을 상부에 매단 구조로 완성된 유럽 최초의 사례다. 건물을 지탱하는 힘은 스물두 개 케이블에 작용하는 장력이다. 장력은 줄이나 케이블이 양쪽에서 팽팽히 당겨질 때 내부에 발생하는 힘을 뜻한다. 가늘지만 강인한 선이 제시한 이 구조적 해법은 내부 기둥을 제거해 공간을 유연하게 열고, 케이블의 얇은 두께는 유리 커튼월을 따라 사방으로 확장되는 시야를 극대화한다. 가장 극적인 장면은 2층 바닥 판 하부, 지면과 맞닿은 1층 외부 공간에서 드러난다. 경계를 따라 어떤 수직 구조체도 내려오지 않기에, 육중한 건물의 몸체는 허공에 떠 있는 듯 보인다. 땅에서 밀어 올려지지 않고, 장력에 의해 매달린 질량. 그 아래에는 최소한의 요소만 남은 빈 공간이 펼쳐진다. 그것은 곧 다양한 행위와 경험을 수용할 수 있는 자유의 여지다. 지진을 따라 유연하게 움직이는 줄일본 이시카와현의 ‘파보(fa-bo) 전시관’은 둔탁한 3층 콘크리트 건물 외곽을 백색의 선으로 감싼다. 수많은 줄이 텐트를 고정하듯 옥상 프레임에서 사선으로 내려와 일정한 각도로 지면에 고정된다. 직선적 박스 매스와 대비되는 곡선의 겹은 건물 표면에 얇은 층을 형성하며, 건축물이 가벼운 커튼이나 스커트를 덧입은 듯한 인상을 남긴다.2015년, 섬유 기업 고마쓰 마테레는 건축가 구마 겐고와 협업으로 기존 업무용 건물을 쇼룸으로 전환했다. 외피를 구성하는 줄은 탄소섬유를 지역 전통의 밧줄 엮기 기법을 응용해 땋아 만든 신소재다. 세계에서 가장 가벼운 내진 보강재로 불리는 이 재료는 높은 인장강도를 자랑하며 통상적인 철골 보강과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지면이 흔들려 건물이 좌우로 움직이면, 각 줄이 미세하게 늘어나며 반대 방향으로 당겨 건물의 변위를 분산시킨다. 자연의 힘은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 건물은 땅의 움직임에 또 다른 강성으로 맞서는 대신, 함께 유연하게 움직이며 스스로를 지탱한다. 균형은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재조정되는 상태에 가깝다.영화 속 단종과 케이블에 매달린 타워, 지진을 따라 움직이는 탄소섬유의 선은 얇고 유연한 것이 지닌 힘의 역설을 환기한다. 경제와 군사력이 국가와 개인을 쉽게 흔드는 시대, 무게와 강성은 해답처럼 보인다. 그러나 균형은 커다란 덩어리에서만 비롯되지 않는다. 균형은 확고한 가치의 단면에서 시작해 끊기지 않고 이어지는 가는 선 위에 세워진다.